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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홀릭_제이 2023. 8. 7. 18:58
풍요로웠던 유년시절


부모님께서는 농사와 멸치어장을 동시에 운영하셨습니다.



농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누나, 형, 저 이렇게 가족들이 먹고 살 정도로만 벼농사를 짓고  풍년이 들어 남으면 농협에 팔아버렸습니다. 농협에 쌀을 팔고나면 아버지께서 그 당시 과자가 가득 든 선물 상자를 사다주시곤 하셨는데 거기서 가장 맛있는 것은 크라운산도(샌드)였습니다.



저는 그 선물상자를 들고 나가 친구들을 줄세워 과자를 함께 나눠주곤 했습니다.과자라고 해봤자 학교 문방구앞에 죽 늘어서 있던 불량식품들밖에 없던  그 시절에 제대로 된 과자를 같이 나눠 먹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저희 가족의 주된 수입원은 멸치어장이었는데, 배를 가지고 바다에 나가 멸치를 잡아와 커다란 대나무살로 만든 판에 삶은 멸치를 말려 크기별로 파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집이 당시 제가 살던 지역의 유지(시골 부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저희 집은 기와집이었는데, 그 당시를 생각해보아도 마당을 중심으로 큰 대문과 사랑채, 본채, 창고와 헛간, 뒷간 그리고 우물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집에는 TV, 전축(LP판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향기기), 냉장고가 있었습니다. 어린이 만화가 상영되면 저희집은 형 친구들과 제 친구들로 발디딜틈이 없었습니다.  냉장고에는 이웃집 반찬들이 가득차 보관되어 있었고, 아버지께서는 이웃들도 들을 수 있도록 LP판 전축을 크게 틀었는데 어머니께서 시끄럽다고 볼륨을 항상 줄여버리고는 했습니다. (웃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의 힘겨움


부모님께서 외할머니 생신 때 외가댁에 가셨다가 돌아오시는 길에 차가 바다에 빠져 부모님께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 당시에 흔하지 않은 자가용인데 그걸 타고 가셨다가 약주를 조금 하신 아버님께서 바다와 접한 길을 구분하지 못해 그만 바다로 빠지고 만 것이지요. (당연하지만, 저는 술을 마시면 절대 운전하지 않습니다. 차가 집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다음날 술을 다깨고 차를 가지러 갑니다.)



조부모님께서도 일찍 돌아가셨으니 누나, 형 그리고 저 이렇게 삼남매만 세상에 덩그러니 남게 된 것이죠.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돈으로 바꾸고 도시로 삼남매가 이사를 갔습니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살아계시는 것 만으로 돈을 만드셨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 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돈 될만한 것들을 파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누나나 형도 물건들의 적정 가치를 모르니 헐값에 팔고 도시로 나갔을 겁니다.



누나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직공장(합섬섬유)으로 취업하고, 형은 공고를 졸업하고 용접공으로 취업을 하였습니다. 저는 누나와 형의 도움으로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누나와 형은 그나마 남은 돈으로 자신들이 대학교를 가면 막내가 대학교를 가지 못할 것을 염려하였을 겁니다. 그래서 막내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일반고가 아니 상업고와 공업고를 갔을 겁니다.



고등학교때는 대부분이 학교와 집을 왔다갔다하고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으니 누가 돈많은 집 친구인지 아닌지 모르고 지냈는데, 대학교에 와보니 돈많은 집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들 사이가 확연해지더군요. 군대가기 전에 어울렸던 친구들 대부분 지방 고학생 아니면 서울이 집이나 좀 어려운 친구들. 군대 다녀와서도 여전히 가까운 그때 그 친구들. 하는 일이라곤 학생회관에서 점심 먹고,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후되면 당구치러 다니고. 술 얻어마시러 가끔 참가하는 과미팅.



그마저 저는 돈이 부족해 수업마치면 학생회관 달려가서 벽보에 부착되어 있는 아르바이트 건 폭풍검색하여 당장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곳으로 현장 출동해야  했습니다. 벽보 붙이기, 전단 나눠주기, 세차, 물건 나르기, 지하 4층 얼음공장에서 지상으로 얼음운반하기, 주차요원, 호프집 서빙 등 젊은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닥치고 한 것 같습니다.(흔히 말하는 노가다는 같이 일하러 간 친구가 떨어지는 벽돌에 발에 금이 가서 하루만에 그만두는 것을 경험한  이후로는 절대 하지 않음) 어쩌다 들어오는 과외수업은 학생부모님의 엄청난 점수상승 압박으로 몇달만에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가끔 부모님께서 사주신 차를 학교에 타고와서 수업 듣고 친한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는 동기를 보면 너무 부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공서적 살 돈이 없어 복사실에서 복사본 사고, 학생회관에서 백반만 먹고 도서관에서 수업 준비하고 수업 후 아르바이트 하러 가야만 하는 내 모습을 보면 졸업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당시 학교를 다니면서 필요한 돈을  혼자 버는 것을 통해 아마 빨리 경제적으로 풍요로와줘야 하고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누나와 형이 언제까지나 저에게 필요한 돈을 지원해 줄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빨리 졸업하여 누나(누나는 그때 결혼을 하였고, 매형이 가끔 몰래 도와줌)와 형 도움없이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고 그동안의 도움에 어떻게든 보답을 해야했으니깐요.

모범 직장인


그런 와중에도 학교 수업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좋은 점수로 인해 가을학기에 졸업을 할 수 있는 성적이 되어 동기들 보다 빠르게 취업을 하였습니다. 동기들보다 빨리 생업에 들어선 것이었죠.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알 수 있는 기업에 취업하였으니 누나, 형 모두 기뻐할만 하였습니다. 게다가 저는 그런 기업체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잘' 하는 직장인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취업 3년만에 승진, 승진후 바로 TFT장, 그리고 몇년만에 파트장. 그리고 저를 자신의 팀원으로 데려가려는 여러 팀장들의 솔깃한 제안들... 하지만 곧바로 팀장으로 승진해버린 저의 모습에 제가 이런 기업체라는 조직에 정말 딱맞는 특화된 사람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직장을 다니면서 어떻게 무자본 온라인 창업으로 그토록 원했던 경제적 자유를 얻었는 지에 대해서는 다음 [프로필 3]에서 계속하겠습니다.



J(제이)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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